사도행전 묵상(4)
사도행전 4장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행 4 : 11)
성령충만함으로 부활의 꿈을 전하던 사도들에게 대제사장 및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무슨 권능으로 이 일을 하느냐고 추궁할 때에 사도들이 대답한 말씀입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기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려진 돌이었지만 머릿돌이 되었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도 이런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소용없다고, 능력 없다고 버렸지만
다른 사회의 한 곳에서 크게 쓰임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관점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저들은 이미 세상 권력의 맛을 알고
있기에 그 권력을 손아귀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일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서 많이 발견됩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는 마음, 그 마음은
결국 지금의 권력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행 4 : 29 - 30)
권력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문입니다. 담대함을 주시고 표적과 기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가 있은 후 땅이 진동하더니
모여 기도하는 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이 있었는지, 기도하여 성령충만함을 얻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성령충만함이 곧 하나님과의 소통이라는 사실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
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 : 32)
성령충만함을 받은 자들에게 재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봅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모습
이죠.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제 칠일 안식교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들도 모든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뭔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과 제칠일 안식교의 공동체 생활이
다를바가 없는데 왜 이단을 분류된 것일까요? 어쩌면 지금의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처럼 권력의 맛을 보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오늘 말씀은 종교지도자들이 지켜야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즉
제칠일 안식교의 공동체 생활은 일반 성도들이 아닌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기업화 되고 성도들은 자신의 재산을 다 내려놓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지혜를 허락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에 감사를 드리며 오늘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