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사람들을 왜, 무엇 때문에....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11) NARA에서 찾은 사진들
최근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결국 좌절됐습니다. 수년째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위령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16
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어떤 유족들은 가족들의 사망일자를 몰라 여태 호적정리는 물론 제사도 제
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이데올
로기 갈등으로 동족을 죽고 죽이는 뼈아픈 역사를 겪어 왔습니다. 그 모습
을 이곳 미국에서 다시 접하고서 저는 통곡이라도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
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
다듬었습니다.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
이 뒤죽박죽돼 있고, 필자도 현재 가려 뽑는 가운데 그날그날 송고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점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필
자 주

1 전주의 학살된시신들
▲ 1950. 9. 27. 전주. 학살된 시신의 사진만 남아 있고 가해자에 대한 기록
은 전혀 없다. 구천을 헤매는 그들의 원혼에 묵념을 드린다. ⓒ NARA

2 가족 시신을 찾기위해 나온 여인
▲ 1950. 9. 27. 전주.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 NARA

3 충주마을주민들이 학살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1950. 9. 29. 충주. 마을 주민들이 학살의 현장을 파서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NARA

4 진주 한 어린이가 상자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있다
▲ 1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씨레이션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 NARA

5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NARA

6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1950. 10. 10.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NARA

7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NARA

8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NARA

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NARA

10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1 탱크를 배경으로 동생을 업고 서 있는 소녀
머리는 헝클어 지고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결의에 찬듯한
눈매에 절망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읍니다.

2 동생을 안고 학교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일터로 나가고 없고, 혼자 남겨 둘 수 없는 동생을 안고 학교로
왔습니다 교실은 불타고 없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1950년 10월)

3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
얼음이 둥둥 떠내려 가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1951년 1월)
석장의 사진은 50여년전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가고 있던 우리네 어
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한국전쟁 발발 56주년. 온 방송은 월드컵 소식을 하루 종일 되풀이
해 방송하고 있지만 오늘 하루 쯤은 당시를 생각해 보게하는 사진을 싣는
것도 전혀 무의미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4 옷이 벗겨진 채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월미도에서 체포된 뒤 옷이 벗겨진 채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1950년 9월)

5 장갑차를 탄 미군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모습.(1950년 9월)

6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군 포로들
인적사항이 적힌 목걸이를 걸고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
군 포로들.(1950년 10월)

7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부짖는 모습
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부짖는
모습.(1950년.10월 함흥)

8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1951년)

9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군
사살할 것으로 오인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1951년)

10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습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
습.(1951년.2월 수원)

11 전란중의 남대문.(1951년 3월)

12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북한병사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북한병사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엎드려 있는
북한군 병사.(1951년 10월)

13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
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촬영 미상)

14 북으로 돌아가는 북한 여군 포로들

1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
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2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우리는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
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3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4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
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5 부모님은 피난길에 돌아가시고...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 년대를 몸
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6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
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7 전쟁으로 한국인의 자화상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
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8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9 얼기설기 피난민생활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
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10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
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11 미군복을 얻어입는 것이 가장행복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
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12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13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소녀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 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14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15 소년의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16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17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
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18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19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
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20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이 어린이가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21 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 포로들이 제작해 걸어 놓은 선동 포스터

22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23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24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이 포로들은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
춘몽이었을까?

25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
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26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인민군 포로들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27 여유를 되찿은 인민군 여자 포로가 미소를 짖고 있다

28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인민군 포로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민군 포로. 탁발
승처럼 모포를 가슴에 두른 것이 인상적이다.

29 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30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31 밤마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
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밤마
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

32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33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 6·25 동족상전 잊지 못할 사진들

1 ▲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압록강에 첫발을 딛고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10월26일 오후 5시50분, 함경남도 혜산에 도착한 6사단
7연대 수색대원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전쟁 당시의 현장 사진을 모았다.
날짜 별 분류를 할 수 없어 아래와 같이 가나다순으로 나열하였다.
가.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
나. 한국전쟁 전투 한국군
다. 한국전쟁 전투 인민군
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순입니다.
*사진 설명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많아
사진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많다.
가.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

2 ▲ 한국전쟁
분단된 조국과 함께 자유를 찾는 일가족들의 모습.

3 ▲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전쟁고아의 모습
(1950년 9월 28일 서울 모습)

4 ▲ 6.25-피난민
한국전쟁 피난민-전쟁고아(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음)

5 ▲ 피난길에 오른 한국의 어머니
(칼 마이던스. 1950)■게재/등록일:19500701

6 ▲ 다큐극장 '한국전쟁'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

7 ▲ 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 게재/등록일 : 19510104

8 ▲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조지 풀러 유작전)

9 ▲ 흥남시민 철수광경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피난민들이 `유엔`군의 `LST`를 다투어 타고 있다.
이 사진은 미공개기록사진 중의 하나다.

10 ▲ 철수함정을 타려고 흥남부두에 쇄도한 북한동포들
1950년 12월12일부터 약 한달동안,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약10만
명의 북한동포가 해상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했는데 사진은 이 때의 광경
이다. 수십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이루어진 이들 수송은 한국과 유엔군의
철수 못지않게 대규모적인 것이었으며, 큰 기적을 이룬 작전으로 유명했다.

11 ▲ 6·25전쟁 중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흥남철수 성공뒤엔 `기적의 배`가...59명 정원 메레디스 빅토리호 피란민
1만4000명 자유의 품으로 인도. 1만4000명의 피란민은 물도 약도 없이 3일
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12 ▲ 남으로...남으로... 50년 7월29일
국군의 소개명령으로 지게나 소가 끄는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

13 ▲ 폐허속에서 노숙하는 전란민 가족(1950년 9월)

14 ▲ 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서울시가와 전난민들(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당시)

15 ▲ 북한동포의 목숨 건 남하 행렬
1950년 12월4일 평양을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북한동포들은 이렇
게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결사적으로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16 ▲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때 서울시민들이 철도에서 피난하고 있는 모습
- 이고...지고..피란행렬. 51년 1.4후퇴 때 서울시민들이 철도를 따라 피란하
고 있다. 피란보따리 위에 어린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17 ▲ 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 피난민
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철수 당시의 피난민 모습
(게재/등록일 : 19510101)

18 ▲ 임시수도 부산의 천막촌. 1951년
나. 한국전쟁 전투-한국군

19 ▲ 드디어 38선(한탄강)을 돌파하고 북진중인 육군용사들.

20 ▲ 전선으로 긴급 출동하는 국군 기병대.

21 ▲ 학도병 전선투입
인민군을 격퇴하기 위해 국군병사들이 50년 7월5일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
다. 몸에 맞지않는 군복과 누비담요, 소총등으로 무장한 것으로 보아 학도
병들인 듯하다.

22 ▲ 삽으로 푸는 가마솥밥
1950년 7월14일 전선에서 국군 취사병들이 임시로 가설한 가마솥에 밥을
지은 뒤 소쿠리에 퍼 담고 있다.

23 ▲ 인천상륙작전에 참가중인 해병대
1949년에 제주도에서 창설되어 6.25개전이래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한국해병대는 1950년 9월15일 UN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상륙
용 주정에서 아군의 함포사격으로 검은 연기 싸인 기슭을 바라보면서 상륙
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24 ▲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서울에 돌입한 국군선봉대 - 패주하는 인민군을 쫓아 직격을 거듭한 상륙
동진부대 국군과 un군은 9월15일 드디어 한강을 건너서 26일까지 인민군
을 완전 소탕, 서울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25 ▲ 38선상의 간이 아치
1950. 38선돌파 기념으로 우리 국군들이 세운것임(게재/등록일 : 19501001)

26 ▲ 1950년 10월 아침
평양입성...평양. 화신앞 모란봉 가는길. 신상철(7사단장)씨와 함께 인민군
의 말을 타고 찍은 모습.

27 ▲ 국군 입성을 환영하는 함흥 시민들.(1950.10.18)

28 ▲ 압록강변에 감격의 태극기
1950년 10월26일, 국군 선봉대 용사들이 만주를 눈앞에 바라보는 압록강
기슭 혜산진에 도달하여 감격에 벅차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고창하
고 있다.

29 ▲ 북한 출격 - 북한의 상공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공군기.

30 ▲ 불을 뿜는 무반동총
육군이 무반동총을 지급받아 무장한 것은 6.25전란 중이었

31 ▲ 우리공군기의 출격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무스탕 전투
기편대

32 ▲ 우리 공군기의 출격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F-51 전폭기들

33 ▲ 한국전쟁중 국군을 위문하고 있는 연예인
다. 한국전쟁 전투-인민군

34 ▲ 美맨스필드硏 한국전쟁 연구서 잊혀진 전쟁을 기억하며 출간
사진은 부산 인근에서 벌거벗은 채 줄맞춰 이동 중인 인민군 포로들의 모습
당시 AP통신의 맥스 데스포 기자가 사진에 담았다.
(■ 자료출처 : 맨스필드연구소)

35 ▲ 출격 준비
북한 공군조종사들이 긴급 출격을 위해 소련제 야크18 전투기에 오르고 있
다.미군의 참전으로 인민군이 제공권을 빼앗긴 시점이 50년 7월10일경이라
는 점에서 이 사진은 이 해 6월말에서 7월초까지의 북한공군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 자료출처 : 톨스티코프)

36 ▲ 인민군의 망중한
북한 인민군 전사가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를 참호속에서 읽고 있다. 시점
과 장소는 불분명하다. (■ 자료출처 : 톨스티코프)

37 ▲ 개전초기 한국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인민군 전차

38 ▲ 탱크를 앞세우고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는 인민군
(촬영일자 : 1950/07/01)

39 ▲ 인민군 탱크들
1950년 6월 28일 중앙청을 거쳐 남대문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인민군 탱크들

40 ▲ 6.25 하의 서울에서 이른바 `의용군` 끌려가는 장정들.

41 ▲ 6.25 전쟁때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T-34-85형 인민군 탱크
6.25 전쟁때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T-34-85형 인민군 탱크. 중량32t, 최대
시속 50km, 승무원 4명으로 인민군 전력의 핵심이었다.
라. 한국전쟁 - 38선. 정전협정

42 ▲ 38선을 긋는 순간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 대령(왼쪽)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오른
쪽)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정을 시작하고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1951.11.26)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11) NARA에서 찾은 사진들
최근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결국 좌절됐습니다. 수년째 이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위령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16
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어떤 유족들은 가족들의 사망일자를 몰라 여태 호적정리는 물론 제사도 제
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이데올
로기 갈등으로 동족을 죽고 죽이는 뼈아픈 역사를 겪어 왔습니다. 그 모습
을 이곳 미국에서 다시 접하고서 저는 통곡이라도 할 것 같았습니다.
이 사진들은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필자가 가려 뽑아 보냅니다.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
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
다듬었습니다.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편집해서 보내지 못한 것은 상자에 담긴 사진
이 뒤죽박죽돼 있고, 필자도 현재 가려 뽑는 가운데 그날그날 송고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들은 모두 미군과 미 종군기자들이 남긴 사진으로, 그들의
시각으로 앵글을 잡아서 촬영하였다는 점을 군더더기 말로 보탭니다...필
자 주
1 전주의 학살된시신들
▲ 1950. 9. 27. 전주. 학살된 시신의 사진만 남아 있고 가해자에 대한 기록
은 전혀 없다. 구천을 헤매는 그들의 원혼에 묵념을 드린다. ⓒ NARA
2 가족 시신을 찾기위해 나온 여인
▲ 1950. 9. 27. 전주.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 NARA
3 충주마을주민들이 학살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1950. 9. 29. 충주. 마을 주민들이 학살의 현장을 파서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NARA
4 진주 한 어린이가 상자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있다
▲ 1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씨레이션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 NARA
5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NARA
6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1950. 10. 10.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NARA
7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NARA
8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NARA
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NARA
10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1 탱크를 배경으로 동생을 업고 서 있는 소녀
머리는 헝클어 지고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결의에 찬듯한
눈매에 절망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읍니다.
2 동생을 안고 학교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일터로 나가고 없고, 혼자 남겨 둘 수 없는 동생을 안고 학교로
왔습니다 교실은 불타고 없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1950년 10월)
3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
얼음이 둥둥 떠내려 가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1951년 1월)
석장의 사진은 50여년전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가고 있던 우리네 어
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한국전쟁 발발 56주년. 온 방송은 월드컵 소식을 하루 종일 되풀이
해 방송하고 있지만 오늘 하루 쯤은 당시를 생각해 보게하는 사진을 싣는
것도 전혀 무의미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4 옷이 벗겨진 채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월미도에서 체포된 뒤 옷이 벗겨진 채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1950년 9월)
5 장갑차를 탄 미군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모습.(1950년 9월)
6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군 포로들
인적사항이 적힌 목걸이를 걸고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
군 포로들.(1950년 10월)
7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부짖는 모습
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부짖는
모습.(1950년.10월 함흥)
8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1951년)
9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군
사살할 것으로 오인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1951년)
10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습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
습.(1951년.2월 수원)
11 전란중의 남대문.(1951년 3월)
12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북한병사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북한병사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엎드려 있는
북한군 병사.(1951년 10월)
13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
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촬영 미상)
14 북으로 돌아가는 북한 여군 포로들
1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
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2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우리는 잡초보다 모질 게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
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3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4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
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5 부모님은 피난길에 돌아가시고...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 년대를 몸
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6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
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7 전쟁으로 한국인의 자화상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
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8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9 얼기설기 피난민생활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
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10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
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하다.
11 미군복을 얻어입는 것이 가장행복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
었다. 간혹 마음씨 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12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13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소녀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 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14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15 소년의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16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17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구를 싣고 수
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18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19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
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20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이 어린이가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21 포로수용소 내에서 친공 포로들이 제작해 걸어 놓은 선동 포스터
22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똥통을 운반하고 있는 공산군 포로들
23 인민군 포로들의 숙소. 난민 캠프를 연상케 한다
24 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이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다
이 포로들은 피가 튀고 뼈가 조각 나는 포연 자욱한 전장은 이들에겐 일장
춘몽이었을까?
25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취사장.흡사 무슨 공장을 연상케 한다. 수만 명의 포
로를 먹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26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인민군 포로들
무장 경비병에 둘러싸인 채 뭔가 지시사항을 듣고 있는 인민군 포로들.
27 여유를 되찿은 인민군 여자 포로가 미소를 짖고 있다
28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인민군 포로
아직도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인민군 포로. 탁발
승처럼 모포를 가슴에 두른 것이 인상적이다.
29 수용소 연병장에 모여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포로들
30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
거제도 포로수용소 경비병이 인민군 포로들로부터 입수한 철조망을 뜯어
만든 사제 무기와 도끼,칼 등을 들고 있다.
31 밤마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
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밤마
다 親共(친공)포로와 反共(반공)포로들의 살육전에 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
32 태극기를 들고 공산당 격퇴를 환영하는 마을 주민들
33 삶과 죽음이 무시로 교차하는 전쟁에서


1 ▲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압록강에 첫발을 딛고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10월26일 오후 5시50분, 함경남도 혜산에 도착한 6사단
7연대 수색대원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전쟁 당시의 현장 사진을 모았다.
날짜 별 분류를 할 수 없어 아래와 같이 가나다순으로 나열하였다.
가.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
나. 한국전쟁 전투 한국군
다. 한국전쟁 전투 인민군
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순입니다.
*사진 설명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많아
사진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많다.
가.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

2 ▲ 한국전쟁
분단된 조국과 함께 자유를 찾는 일가족들의 모습.

3 ▲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전쟁고아의 모습
(1950년 9월 28일 서울 모습)

4 ▲ 6.25-피난민
한국전쟁 피난민-전쟁고아(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음)

5 ▲ 피난길에 오른 한국의 어머니
(칼 마이던스. 1950)■게재/등록일:19500701

6 ▲ 다큐극장 '한국전쟁'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

7 ▲ 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 게재/등록일 : 19510104

8 ▲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조지 풀러 유작전)

9 ▲ 흥남시민 철수광경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피난민들이 `유엔`군의 `LST`를 다투어 타고 있다.
이 사진은 미공개기록사진 중의 하나다.

10 ▲ 철수함정을 타려고 흥남부두에 쇄도한 북한동포들
1950년 12월12일부터 약 한달동안,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약10만
명의 북한동포가 해상을 통해 남쪽으로 탈출했는데 사진은 이 때의 광경
이다. 수십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이루어진 이들 수송은 한국과 유엔군의
철수 못지않게 대규모적인 것이었으며, 큰 기적을 이룬 작전으로 유명했다.

11 ▲ 6·25전쟁 중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흥남철수 성공뒤엔 `기적의 배`가...59명 정원 메레디스 빅토리호 피란민
1만4000명 자유의 품으로 인도. 1만4000명의 피란민은 물도 약도 없이 3일
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12 ▲ 남으로...남으로... 50년 7월29일
국군의 소개명령으로 지게나 소가 끄는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

13 ▲ 폐허속에서 노숙하는 전란민 가족(1950년 9월)

14 ▲ 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서울시가와 전난민들(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당시)

15 ▲ 북한동포의 목숨 건 남하 행렬
1950년 12월4일 평양을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북한동포들은 이렇
게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결사적으로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16 ▲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때 서울시민들이 철도에서 피난하고 있는 모습
- 이고...지고..피란행렬. 51년 1.4후퇴 때 서울시민들이 철도를 따라 피란하
고 있다. 피란보따리 위에 어린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17 ▲ 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 피난민
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철수 당시의 피난민 모습
(게재/등록일 : 19510101)

18 ▲ 임시수도 부산의 천막촌. 1951년
나. 한국전쟁 전투-한국군

19 ▲ 드디어 38선(한탄강)을 돌파하고 북진중인 육군용사들.

20 ▲ 전선으로 긴급 출동하는 국군 기병대.

21 ▲ 학도병 전선투입
인민군을 격퇴하기 위해 국군병사들이 50년 7월5일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
다. 몸에 맞지않는 군복과 누비담요, 소총등으로 무장한 것으로 보아 학도
병들인 듯하다.

22 ▲ 삽으로 푸는 가마솥밥
1950년 7월14일 전선에서 국군 취사병들이 임시로 가설한 가마솥에 밥을
지은 뒤 소쿠리에 퍼 담고 있다.

23 ▲ 인천상륙작전에 참가중인 해병대
1949년에 제주도에서 창설되어 6.25개전이래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한국해병대는 1950년 9월15일 UN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상륙
용 주정에서 아군의 함포사격으로 검은 연기 싸인 기슭을 바라보면서 상륙
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24 ▲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서울에 돌입한 국군선봉대 - 패주하는 인민군을 쫓아 직격을 거듭한 상륙
동진부대 국군과 un군은 9월15일 드디어 한강을 건너서 26일까지 인민군
을 완전 소탕, 서울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25 ▲ 38선상의 간이 아치
1950. 38선돌파 기념으로 우리 국군들이 세운것임(게재/등록일 : 19501001)

26 ▲ 1950년 10월 아침
평양입성...평양. 화신앞 모란봉 가는길. 신상철(7사단장)씨와 함께 인민군
의 말을 타고 찍은 모습.

27 ▲ 국군 입성을 환영하는 함흥 시민들.(1950.10.18)

28 ▲ 압록강변에 감격의 태극기
1950년 10월26일, 국군 선봉대 용사들이 만주를 눈앞에 바라보는 압록강
기슭 혜산진에 도달하여 감격에 벅차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고창하
고 있다.

29 ▲ 북한 출격 - 북한의 상공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공군기.

30 ▲ 불을 뿜는 무반동총
육군이 무반동총을 지급받아 무장한 것은 6.25전란 중이었

31 ▲ 우리공군기의 출격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무스탕 전투
기편대

32 ▲ 우리 공군기의 출격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F-51 전폭기들

33 ▲ 한국전쟁중 국군을 위문하고 있는 연예인
다. 한국전쟁 전투-인민군

34 ▲ 美맨스필드硏 한국전쟁 연구서 잊혀진 전쟁을 기억하며 출간
사진은 부산 인근에서 벌거벗은 채 줄맞춰 이동 중인 인민군 포로들의 모습
당시 AP통신의 맥스 데스포 기자가 사진에 담았다.
(■ 자료출처 : 맨스필드연구소)

35 ▲ 출격 준비
북한 공군조종사들이 긴급 출격을 위해 소련제 야크18 전투기에 오르고 있
다.미군의 참전으로 인민군이 제공권을 빼앗긴 시점이 50년 7월10일경이라
는 점에서 이 사진은 이 해 6월말에서 7월초까지의 북한공군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 자료출처 : 톨스티코프)

36 ▲ 인민군의 망중한
북한 인민군 전사가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를 참호속에서 읽고 있다. 시점
과 장소는 불분명하다. (■ 자료출처 : 톨스티코프)

37 ▲ 개전초기 한국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인민군 전차

38 ▲ 탱크를 앞세우고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는 인민군
(촬영일자 : 1950/07/01)

39 ▲ 인민군 탱크들
1950년 6월 28일 중앙청을 거쳐 남대문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인민군 탱크들

40 ▲ 6.25 하의 서울에서 이른바 `의용군` 끌려가는 장정들.

41 ▲ 6.25 전쟁때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T-34-85형 인민군 탱크
6.25 전쟁때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T-34-85형 인민군 탱크. 중량32t, 최대
시속 50km, 승무원 4명으로 인민군 전력의 핵심이었다.
라. 한국전쟁 - 38선. 정전협정

42 ▲ 38선을 긋는 순간
유엔군 연락장교 제임스 레이 대령(왼쪽)과 인민군 연락장교 장춘산(오른
쪽)이 판문점에서 휴전선을 정하는 협정을 시작하고 지도에 38선을 긋고
있다.(1951.11.26)
출처 : 수선박사강
글쓴이 : 수선박사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