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논단

[스크랩] 자본주의 국가를 관계와 전략으로 이해하기: moraz

하나님 사랑 2016. 4. 4. 18:05

자본주의 국가를 관계와 전략으로 이해하기: moraz

밥 제솝(지음), 유범상/김문귀 (옮김), <<전략관계적 국가이론: 국가의 제자리 찾기>>, 한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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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제솝(Bob Jessop)의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의 번역 출간은 그 이론적 공헌도와 원저(State Theory: Putting the Capitalist State in Its Place, Cambridge: Polity Press)의 출간 시기(1990년)를 감안해 볼 때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지구화 및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는 한편으로 국가에 관한 관심이 부당하게 죽어버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해 주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의 적절한 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일간지 기자가 제솝과의 인터뷰 기사에도 썼듯이, 분명히 지금 “지구화 시대에 ‘국가’ 자체가 부적절한 탐구대상이라는 지적도 있어 국가론에 대한 관심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 지구화의 대표적인 사례중의 하나인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동도 국가가 법과 제도를 통해 금융과 자본시장을 자유화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명백한 사실조차 간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 출간은 저자의 폭넓은 지적 배경 및 독특한 문체와 용어에 기인한 난해한 영어 원문을 한국어화하여 접근 가능성을 높였다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지적 발전을 지구화 시대의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위상과 연관하여 서술한 한국어판 서문을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이 제솝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던 간에,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재구성 과정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국가형태에 관한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제솝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필자의 해석에 근거해 소개하고, 제솝의 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을 몇 가지 서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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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azs)의 이론을 정교화하고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는, 제솝의 국가이론은, 한국어판 제목이 가리키듯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이다. 이것은 제솝이 국가를 전략인 동시에 관계로 이해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국가를 전략과 관계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풀란차스도 그랬고 제솝도 인정하듯이 국가는 사물이나 주체가 아니라 관계이다. 그런데 사물이나 주체는 무엇이고 관계는 또 무엇이며, 이들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언뜻 들어 알기 어려운 이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사물 또는 주체로서의 국가: 흔히 사물은 일정한 정해진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가위에는 가위로서 다른 사물을 자르는 기능이 있다. 전통적인 (특히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이러한 가위의 목적은 가위의 본질로 이해된다. 이와 유사하게, 전통적인 맑스주의에서도 국가는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이든 ‘관념적 총자본가’이든간에 자본주의적 생산 및 계급 지배를 재생산하는 본질적 기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제1장 참조). 이와는 반대 경향으로, 국가를 사회적 행위의 주체로 바라보는 견해(특히 미국의 베버주의적 거시 역사사회학의 조류)가 있는데, 이 경우 국가는 사회전반의 인구 및 자원의 동원능력을 가지고 국가관료의 이익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권력 주체, 다시 말하면 통일성/동일성을 가지고 행위하는 독립변수로 간주된다(제10장 참조).

그러나 국가를 단순히 특정한 불변의 성질이 주어져 있는 사물, 또는 동일성을 지닌 주체로서만 파악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초래한다. 제솝에 따르면, 국가를 단순히 ‘자본주의 재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자본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평가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국가에 의해 추구되는 특정한 축적전략은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다(232-236, 491~492쪽)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의 특수성 및 역사성으로 인해 자본주의 국가가 선험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의 변화, 복합성 및 다면성 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국가의 기능과 형태, 능력과 권력 등이 단순히 정해져 있거나 동일성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은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되고 사멸해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제솝도 수용하고 있는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을 따르자면, 국가의 이해를 위해서는 단순히 표면적으로 경험(the empirical)되거나 실제로 일어난 것(the actual)들을 넘어서 그 심층에서 그러한 현상을 가져 온 것, 즉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the real)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반대로 국가를 사물이나 주체로 파악하는 관점은 이렇게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국가의 형태와 기능에 관한 이해를 문자 그대로 물화(物化)시키고 단순화시켜,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필요이상의 낙관론이나 비관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형태결정된 관계로서의 국가: 국가의 성격을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한 방법은 국가를 관계, 특히 협소한 계급관계를 뛰어 넘는 광범위한 사회관계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우리는 국가에 선험적으로 (또는 국가 담론 이전에) 주어진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솝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제12장).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국가(의 실재)를 (자본주의 재생산 기능 등이 아니라) 사회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다. 국가가 계급투쟁과 역사적 특수성을 수반하는 사회관계로 환원할 경우, 왜 계급투쟁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는가, 그리고 국가라는 개념이 굳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제1, 9, 10장 참조) 다시 말하면, 국가가 사물이 아니라 관계라는 개념에 대해 여전히 미숙한 우리는, 국가는 여전히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 즉 기능을 가진 사물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또다시 던지게 된다.

이에 대한 대답은, 첫째, 국가는 단순히 사회관계가 아니라 물질화된 사회관계이고, 둘째, 국가라는 물질체는 사회관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풀란차스도 제솝도 국가의 물질적 성격을 부인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형태와 기능 등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물질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사물로서 독립적 존재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풀란차스에 따르면 국가는 계급세력간 관계의 형태결정된 [물질적] 응축이며, 제솝에 따르면 자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형태결정된 사회적 관계이다(298쪽). 이것은 첫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상품과 자본이라는 형태로 물질화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로 사회관계가 자본주의 국가라는 제도/기구의 형태로 물질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 동시에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 특정한 가치형태 뒤에 그것을 넘어선 특정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존재하고 있듯이, 이미 존재하는 특정한 자본주의 국가의 표면적 형태 뒤에 그것을 넘어선 특정한 사회관계, 즉 세력 균형이 있음을 의미한다(제7장). 그러므로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형태뿐 아니라 그것을 형성시키는 광범한 사회적 관계를 고찰해야 한다. 요약하면, 국가는, 단순히 국가 자체나 (자본축적 과정을 포함한) 사회화(Vergesellschaftung) 중 어느 하나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화 과정과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솝의 주장이다(서론 45-49쪽).

자본주의 국가의 형태적 특징: 제솝에 따르면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적 특징은 자본순환, 즉 잉여가치 추출로부터의 제도적 분리에 있다(298쪽).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제도적으로 분리된 자본축적과정의 작동에 있어 경제외적 존재 조건들(법, 국가 등)이 핵심적이다. 왜냐하면 생산력은 지배적인 사회적 생산관계에 의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141-142쪽)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는 제도적 분리라는 기본적인 형태 외에도 자본주의적 사회화 과정과의 관계 속에서 대표, 개입, 접합의 여러 다른 형태들을 띠게 된다(제4, 5장).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정치-경제 혹은 국가-시장의 제도적 분리 형태는 국가의 대표, 개입, 접합 형태에 따라 여러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방식을 따르면, 예를 들어, 지구화 과정에서의 국가의 위상을, 국가의 후퇴나 약화가 아니라 형태 변화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관계적-사물적 사고 방식에 따르면 표층적인 눈앞의 현상만을 쫓게 되어, 경제와 정치는 제로섬(zero-sum) 관계로 파악되고 지구화는 국가의 전반적인 후퇴 및 약화를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관계론적 사고를 채택하면, 지구화라는 사회화 과정은 국가 형태의 관점에서 경제/정치의 경계 및 관계를 새로 설정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제솝이 언급하는 서구의 케인스주의적 복지국민국가(Keynesian welfare national state) 형태 하에서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자본순환)의 수요/소비 및 분배 측면에서 대단히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조정과 조절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형태의 새로운 경향인 슘페터주의적 근로탈국민체제(Schumpeterian workfare post-national regime)하에서, 국가는 수요/소비보다는 공급/생산에 영향을 미치려 하며(예: 국가경쟁력 강화), 사회복지제도에 기반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재분배보다 시장에 의한 분배(예: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시장 및 노동력의 유연화)를 추구한다. 이처럼 국가의 기능이 수요 및 재분배의 측면에서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후퇴하고 약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급/생산과 기능 및 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노동통제의 측면에서 국가의 역할은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제솝의 말처럼 “사회화의 양식들이 변화함에 따라 국가의 양식 또한 변화한다. 국가이론가들이 국가를 변화되지 않고 선험적인 속성이 부여된 것으로 다루면서 국가를 분석대상으로서 구체화하고 본질화했는데, 만약 국가를 사회적 관계로 다룬다면 국가이론은 여전히 많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 16쪽)

전략으로서의 국가: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 국가의 형태적 변화 또는 형태적 다양성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국가가 형태결정된 사회관계라는 제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국가의 형태가 어떠한 사회관계 속에서 형성되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제솝에 따르면 국가의 형태를 결정하는 사회관계는 자본의 논리나 역사적 특수성을 띤 계급투쟁만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의 경우 근대국가를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단 하나의 자본논리만을 가정하여 지나치게 제한적이며, 후자의 경우 국가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우연적인 것으로만 그린다고 그는 비판한다. 이 양자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서 제솝은 자본주의 사회에는 단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대안적인 자본논리 및 정치논리가 있으며, 계급투쟁은 차별적인 역량과 계산방식을 가진 물질화된 전략들로 조직화된다는 전략이론적 접근법을 제안한다(제9장). 그러므로 제솝에 따르면, 국가의 형태는 구조에 의한 획일적 결정이나 자유의지에 따른 무수한 개별적인 투쟁에 의해 설명되기 보다는 차별적이고 비대칭적인 전략들(여러 국가 프로젝트, 헤게모니 프로젝트, 축적전략 등)의 사회적 관계 또는 세력 균형으로부터 형성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동시에, 이로부터 귀결된 다양한 국가 형태들은 역으로 사회화 과정의 제 전략들에 대해 차별적이고 비대칭적인 결과를 낳는데 제솝은 이러한 형태결정적 편향을 국가의 전략적 선택성(strategic selectivity)이라고 부르고 있다(서문, 제1, 7, 9장). 바로 이 전략이라는 개념의 계승 및 정교화가 풀란차스적인 관계론적 국가론에 대한 제솝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옮긴이 서문에서 번역자들은 제솝의 글은 난해하며 그의 복잡한 개념들보다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쓰고 있다. 필자도 여기에 동의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첫째, <전략관계적 국가이론>은 하나의 체계적 전체를 이루도록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라 제솝의 국가론의 발전궤적을 보여주는 논문집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책에 쓰여진 용어들도 나름의 발전궤적을 갖고 있으며 하나의 완성된 국가론 체계의 완전무결한 논리적 부속품들로 기능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마지막 제12장조차도 제솝의 국가에 관한 개념적 논의 모두를 포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어에 집착하기 보다는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로, 제솝의 이론이 추상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추상적인 이론들과의 대화/대결하면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매우 압축적으로 쓰였고 경험적인 사례 제시에 인색하다. 그 결과는 그가 사용하는 개념들이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직접 지시하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솝의 개념들은 구체적인 현실맥락 속에 위치되어야 이해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제솝이 현실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들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독자가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갖고 있을 때라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독자가 하나의 일관된 틀 내에서 모든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관계 지으며 하나의 완전한 체계로서 조망해야겠다는 태도를 갖고 있을 때 제솝의 이론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을 감안할 때 그리고 전략관계이론은 하나의 접근법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제솝의 태도와 아이디어로부터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관한 영감을 얻고자 하는 자세일 것이며, 그렇게 접근하는 한, 제솝의 책에서 설사 단 한편의 논문을 읽고 단 하나의 개념만을 이해할 수 있을지라도 매우 뜻 깊게 이해될 것이다. 둘째, 독자가 이론의 이해로부터 구체적인 현상의 이해로 곧바로 손쉽게 도달하길 기대할 경우, 제솝의 이론은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솝의 이론이 실제 세계와 무관하게 공허한 추상적인 세계에만 존재하는 이론이라는 뜻이 아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제솝의 이론과 개념들은 여러 경험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은 독자들이 나름대로 구체적인 맥락에서 제솝의 이론과 개념들을 현상과 연결 지을 수 있는 한에서이다. 예를 들어 ‘전략’이나 ‘전략적 선택성’ 등과 같은 개념들이 별다른 경험적 예시 없이, 때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제시되기 때문에 이해가 언뜻 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솝은 이러한 개념들을 상식적인 의미나 자신이 서술한 바를 넘어서는 어떤 신비한 함축을 부여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판사회이론과는 무관하게 보이는, 경영학 등에서 언급하는 재무전략, 사업전략, 마케팅전략, 세계화전략 등등도 충분히 전략관계론에서 말하는 바로 그 ‘전략’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설사 제솝 자신의 경험적 예시가 불충분하더라도, 독자들에게 제솝의 개념들을 구체적 현실 속에서 비교적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제솝의 추상적 개념들은 그것들을 현실과 관련 지어 사고하려는 능동적인 독자들에게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제솝의 이론을 이론 그 자체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현실 인식에 도움이 되도록 영감을 주는 재료로 대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이론을 잘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태도로서 제솝의 이론을 대할 수 있는 까닭은 애당초 그의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솝의 전략관계이론은 하나의 접근법이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변형시킬 수도 있고 발전시킬 수도 있는 이론이며, 연구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는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종의 도구이다. 이러한 인식의 자연적 귀결은, 경우에 따라 전략관계적 이론이 현실 이해의 틀로서 부적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솝의 이론은 의사소통행위와 같은 전략적 행위와 구별되는 다른 가능한 행위 양식들을 이론화하고 있지 않다. 또한 전략의 존재를 전제로 한 이론이기 때문에 두드러진 전략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전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론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이런 식으로 다른 이론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제솝은 ‘접합’의 방법이라 부르면서 수용한다). 그리고 전략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전략들을 어떻게 자의적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인식론적 문제는 항상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들과 어려움들을 인식하고 난 후에 우리는 제솝의 국가론을 정당하게 이해, 평가,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책과 문제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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