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치체제의 구조와 과정
차동길
1. 서 언
북한정치체제는 다른 사회주의국가와 비교해보아도 가장 폐쇄적이고 전체주의체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제한사항을 감안하면 북한체제의 기본적인 성격을 파악하고자 할 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로 북한체제가 형성되기 이전의 북한은 500년의 전제군주체제하에 있었던 지역이다. 조선왕조에 이어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고 이어 현재의 북한체제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일제식민주의를 가리켜 ⌜사상 유례가 없는 가혹한 식민정책을 강행했던 식민적 전체주의⌟라고 평한 바 있지만 일본제국주의 체제 아래 북한주민은 남한주민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통제와 억압을 겪었다. 해방이 되고 남한 주민이 서구민주주의에 접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주민은 구소련 군정 밑에서 일제 시대를 방불케 하는 조직적인 통제와 세뇌공작의 연장을 계속 경험했다. 그리고 북한집권세력은 일제가 다져놓은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피동주의적인 정치경향을 십분 이용하여 공산전체주의체제의 공고화를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었다. 둘째로 북한정치체제는 중국처럼 장기간에 걸친 내란이나 혁명을 거쳐 집권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해방 후 구 소비에트연방 군의 북한점령기간에 군정에 의해 강제로 세워진 점령공산정권으로 이후 김일성 유일체제와 3대 세습으로 이어진 독제적 세습체제이다. 따라서 북한이 ‘자주’와 ‘주체’ 그리고 ‘선군’을 들고 나온 것도 김일성 일가의 세습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대외선전용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로 북한정권은 6.25전쟁을 도발하여 무력으로 남한을 점령하려 했던 호전적인 정권이이다. 비록 1970년대 초부터 상황은 약간 바뀌어졌으나 대남관계에서 북한은 극도의 대립 긴장정책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오고 있다. 이것은 그 체제가 계속 군사력을 최우선 고려대상으로 하여 유지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체제유지에 있어 군부의 힘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처럼 점령 하에 세워졌고,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문화에 의해 준전시체제로서의 병영 국가적 성격을 지닌 북한체제를 구축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김일성과 그 아들 및 손자로 이어지는 전체주의적 독제자이다. 구소련 혁명 이후의 정치체제를 빚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스탈린의 개성과 정치 스타일이 구소련체제의 성격과 분리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의 북한체제의 성격을 파악하는데는 김일성의 영향, 역할, 개성을 빼놓을 수 없다.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을 ⌜스탈린체제⌟로 부르는 것처럼 오늘의 북한체제는 ⌜김일성 체제⌟로 시작하여 ⌜3대세습체제⌟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 연구서는 그러한 시각에서 북한정치체제의 구조적 특성과 그 체제의 정치과정의 다이나믹스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2. 북한정치체제의 구조적 특성
정치체제가 ⌜명령‧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계질서화 된 권위구조⌟라는 의미에서 볼 때 북한체제는 하나의 정치체제임에 틀림이 없다. 북한 내에서 ⌜위계질서화 된 권위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대외(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및 대남 관련한 일에 대해 자신의 상황판단이나 감지능력을 토대로 정책을 결정해야 하며 저들이 내린 결정은 북한의 사회, 정치, 경제, 정치안정, 정치변화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북한의 정치체제를 ⌜위계질서화 된 권위구조⌟로 볼 경우 그 체제를 구성하는 주요구조는 ①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구성원간의 권력 서열의 특징, ② 권력구조 내에서 내려지는 명령, 지시의 내용과 그것의 정당성여부에 대한 반응, 그리고 ③ 핵심권력을 가진 엘리트와 대중간의 관계이다. 특히 북한에서 핵심권력을 가진 엘리트와 대중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정당이라 할 수 있는 노동당조직이다. 양자를 결속시키고 한편으로는 대중에 대한 철저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북한의 정치체제를 다음과 같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 수령과 엘리트
북한정권은 공식적으로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 김정일을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을 ⌜진정한 인민의 영도자⌟ 등 수사적 표현으로 호칭하고 있다. 수령은 영도자의 머리라는 뜻이다. 여러 가지 상황적 자료에 의해 보아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권위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체제의 상층권력구조 속에서 김부자 및 손자와 지도층, 또는 엘리트와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전형적인 피라밋형 구조의 정점을 차지한다. 1972년에 제정한 북한 헌법 속에서 김일성은 ⌜주석⌟이 되었고 신헌법 하에서 김일성은 국가원수인 주석인 동시에 중앙인민위의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중앙인민위원회는 ⌜최고영도기관⌟으로 되어있고 최고인민회의에 대한 통제권을 지니고 있다. 이어 등장한 김정일과 김정은 도 같은 위치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으며 그 밑의 엘리트집단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의문이라 하겠다.
이정식 교수에 의하면 과거 김일성 시대에 약 15명의 지도층이 측근세력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저들은 당의 정치위원회를 장악한 세력으로 정무원의 총리, 부총리직을 겸하기도 하였으며 그 중 몇 사람은 국방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서 군부를 통솔하기도 했다. 이처럼 극소수의 측근세력이 중첩된 요직을 나누어 가지면서 북한권위구조내의 핵을 구성하며 김일성에 대한 절대충성을 위한 경합을 벌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김정일 정권하에서도 일어났고 또 지금 김정은 정권하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의 정통성과 상징성을 나타내는 김씨 일가와 북한지도층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 비대칭적이라는 사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북한의 위계질서가 전형적인 피라밋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주요특징이다. 당중앙위원회라는 기구를 하부에 두고 그 위에 정치위원회와 여타 상임위구성원이 차지하며 그 위에 핵 집단이라 할 10여명의 영도세력이 최상층을 형성한다. 김일성 부자와 그 손자는 그들 위에 군림하는 수령이다.
형식상 이러한 피라밋의 권위구조는 사회주의체제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는 권력구조이긴 하나, 김일성 부자와 손자는 과거 중국의 모택동이나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비교해 보아도 또 현재의 중국 지도체제와 비교해 보아도 월등하게 비대칭적이고 절대적이라 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중국의 모택동은 측근세력이나 고위지도층으로부터 상당한 견제와 제약을 받았던 것이 최근의 중앙연구에서 밝혀지고 있고 구소련의 브레즈네프도 중요결정을 내릴 때 지도층의 인사와 상의 및 협의 하였고 형식상이나마 집단지도체제의 테두리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 김일성 부자와 손자의 권능, 권한은 명실 그대로 무제한, 무견제상태의 만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노동당도 김일성이 창당한 것이고 인민군도 김일성의 피조물이라 할 수 있으며 오늘 북한정치체제의 유지 운영을 맡고 있는 전문 기능엘리트나 노동당의 중견간부층의 대부분이 김일성 부자와 손자에 의해 선발되고 진출을 보게 된 세력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도 김씨 일가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나. 강화된 중앙집권체제
북한은 소위 ⌜민주적 중앙집권주의⌟(Democratic centralism)라는 공산주의 특유의 조직원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 민주적 요소는 무시한 채 중앙집권에만 치우치고 있다. 구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이 와해되었으며 중국이 중국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서방국가들과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유지하는 상황 하에도 북한은 오히려 과거의 공산체제인 중앙집권보다 강화된 통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이 지방기관의 강화를 역설하면서 부총리급의 당 고위간부를 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도록 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중앙과 지방간의 격차, 대립은 과거 구소련이나 중국에서도 문제가 되어왔다. 구소련과는 달리 중국의 지방기구는 어느 정도 자치권을 행사해 왔고 중앙과 지방간의 균형이 강조되어 왔다. 이에 비한다면 북한은 처음부터 가장 철저하게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였으며 그 테두리 안에서 지방조직을 대중동원의 수단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가령 김일성 체제에서 시작된 ⌜청산리 방법⌟, ⌜대안공장방식⌟ 등은 집단농장이나 공장을 단위로 농민과 노동자를 경제개발에 동원하기 위한 전술이며 이것이 노린 것은 당 계급노선을 중시하는 당위원회와 생산성을 강조하는 경영위원회사이의 마찰을 없애면서 대중을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조직방법을 찾아내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대중노선(Mass Line)을 강조해온 북한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로부터의 지시⌟와 중앙의 목표달성을 위해서 대중(지방)을 활용하려는 일방통행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북한의 경우 과거 구소련이나 중국에서 나타난 정도의 분권이상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중앙에 의한 지방조직의 단속 강화하는 현상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중앙집권체제가 철저하게 실시되고 있는 것을 방증해주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북한 내에 대중의 특징이익을 대변 증진하기 위한 이익단체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과거 구소련체제에서도 상당한 수의 이익단체의 활동을 허용하였으며 그 나름대로의 다원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중국의 경우에도 지방을 중심으로 다수의 이익단체가 활동하였다. 그것들은 각기 자기들의 출판물, 영화 등을 가지고 대중강연을 개최하기도 하고 당의 정책결정과정에 간접적이나마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지금까지 지방조직의 자율성은 전혀 허용되지 않고 대중의 특정이익을 위한 이익단체의 출현도 억제되고 있는 것이다.
다. 지도자 명령에 따른 대중 동원체제
일반적으로 국가가 내리는 지시와 명령은 헌법에 기초하며 국민은 이에 따라야 할 의무를 갖는다. 따라서 국가의 지시와 명령은 정치체제의 권위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고위지도층에 의해 내려지며 국민은 그 지시와 명령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되는데 이를 정통성감정(Legitimacy sentiments)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강도 높은 중앙집권체제하에서 정통성감정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수단이 바로 ⌜주체사상⌟과 ⌜김일성 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김일성 주의⌟는 마르크스·레닌·스탈린·모택동 사상과 같은 수준의 독창성 있는 사상으로 추켜 세우고 김일성을 위에 열거한 인물과 동격의 지도자로 숭배토록 함으로써 김일성이 내린 지시·명령의 존엄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며 위에서 내려진 결정이나 지령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는 신화를 조작 하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유일무이한 공식 이데올로기로 설정하고 그것을 장기간 주입시켜옴으로써 북한주민들은 주체사상 외에는 다른 사상이나 이론과 접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비판하기 위한 기준을 갖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마치 조선조시대에 주자학만을 유일하고 정통적인 학문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왕조의 정통성기반으로 삼았던 경우와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이 이룩한 하나의 결과는 그것으로 당, 정부, 북한주민을 하나로 묶는 유일사상으로 제도화시키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신격화, 자기희생과 절대복종의 인간형강요, 외부세계에 대한 철저한 폐쇄정책, 김일성 권력의 세습적 계승 등을 강조함으로써 김일성 일인 독제의 강화와 그 체제에 순종할 수 있는 주민의식형성에 활용한 것이다.
또한 김정일의 ⌜선군정치⌟도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강화하기위한 수단으로써 북한 정치체제의 근간에 군을 최우선시 하는 정치 이념인 셈이다.
3. 북한체제의 정치과정
일반적으로 정치과정을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서구민주사회에서 볼수 있듯이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정치활동에 대해 개인이나 수많은 이익집단 그리고 매스콤이 경합하는 가치분배의 과정으로 보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정부의 정책결정이 당 기구를 통해 하달되어 사회를 변화시키고 환경에 적응해 가는 체제유지과정으로 보는 견해이다.
북한 내의 정치과정은 첫째 견해보다 두 번째 견해에 해당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특정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의 존재가 금지되어 있고 오직 당의 결정만이 용납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 체제 내에서 가치분배의 정치과정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소수의 엘리트층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즉 주로 정부의 결정과정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나 경쟁이 허용되고 있을 뿐 당 외 세력이나 집단의 개입이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정치과정을 다음 세 가지측면을 중심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가. 엘리트층 내의 잠재적 암투
북한의 지도층은 비교적 안정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북한지도층은 두 번 대대적인 교체 편성을 겪었는데 첫 번째는 6.25전쟁 직후이고 두 번째는 1966년 10월의 제 4차당대회였다. 흔히 알려진바 연안파·소련파에 대한 숙청과 불발 쿠테타 후에 있었던 교체는 부분적이고 미소한 것이었다. 오히려 대규모적인 교체가 일어나기는 제5차 당 개최 2-3년 전인 1967-1968년 사이에 있었던 갑산파 내부의 핵분열에서 파생한 교체였다. 즉 갑산파출신의 군장성급인물이 대거 탈락한경우로서 그 배후에는 대 남한관계, ⌜프에블로호 사건⌟후의 대미 긴장관계, 그리고 북한의 대 서방 외교 등 중요한 정책대립이 개제된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후의 남노당 세력숙청이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표본이었다면 후자인 갑산파내의 분열은 권력투쟁이 정책문제와 결부되어 전개된 경우였다고 하겠다. 김일성 후계문제와 김정일 후계문제를 둘러싼 엘리트 내부의 대립투쟁은 첫 번째의 경우처럼 순전한 권력투쟁양상을 띠우고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집권자가 생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후계자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특이한 면이 있어서 보다 복잡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북한체제처럼 반대세력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고 당(사실은 일인 독재자의 결정)의 정책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체제하에서는 반대세력이 지니는 위험부담은 큰 것이며 그것은 고작해서 파괴적 성격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도 표면화될 수 없는 은밀한 조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집권자가 생존하는 동안은 잠재적일 수밖에 없으나 일단 집권자가 사망하거나 그의 통제력이 약화될 경우 문제화될 수 있다. 그래서 북한 내에서도 엘리트층 내부에는 심각한 암투가 잠재하고 있을 것으로 가정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북한체제의 정치과정을 좌우하는 주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 당과 관료체제와 보조기관간의 난맥
서구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정치과정에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관료집단이다. 관료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주요정책을 수립할 수도 있고, 또한 다수의 이익단체의 압력을 받아 저들의 요구를 정책수립과정에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산체제하의 국가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군과 민간관료들은 당이 내린 결정을 기계적 절차에 따라 집행할 뿐이
다. 당 중앙위의 서기국이야말로 전권을 장악한 기구로서 입법, 당과 국가기관의 결정을 검토하고 감시를 실시하며 정책결정을 주도한다. 공산체제 내에서 권력중심부를 이루는 것은 당서기국이다.
그러나 공산체제에는 당과 국가기관 외에 그것들을 조보조하는 기능을 맡는 정치적 경찰(비밀경찰)과 청년단체가 있다. 이것들이 맡는 역할은 당의 정치적 독점을 옹호하는 것이며 국가방위를 부차적 사명을 여기고 있다. 때로는 보조단체가 당이나 국가기관을 통제할 수도 있다. 과거 구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그랬다. 스탈린 사망 후에는 정치적 경찰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감소된 바 있다. 청년조직도 중요한 보조단체로서 그것은 당을 대신해서 젊은 세대를 이데올로기화 하거나 사회화과정에 영향을 주는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당의 영구지배를 지원해준다.
이처럼 당과 국가기관의 관료집단, 그리고 보조단체사이의 관계는 당이 우위를 차지하는 종속관계이긴 하지만 이들 3자 사이에 적지 않은 적대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북한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당의 통제 감독에 대해서 국가기관의 관료집단이 반발, 저항할 경우도 있을 것이며 특히 지방에서 당위원회와 경영위원회 사이에서 마찰이 빈번한 바 있다. 그래서 김일성은 수차의 연설이나 지시에서 그것을 문제 삼아 시정책을 논한 바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북한에는 ⌜3대혁명소조⌟라는 강력한 보조기구(Auxilary structure) 가 조직되고 그것을 김정일의 통솔 하에 둠으로써 비 기성세대를 발판으로 한 김정일의 계승을 가능케 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바 있다. 이것은 당, 국가기관, 그리고 강력한 보조기구로서의 혁명소조(일종의 중국문화혁명시기의 적위대에 해당)사이에 불균형관계가 조성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며 특히 계승문제를 둘러싸고 당내와 국가기관 내에 심각한 내분을 자아내는 소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후반에 들어와서 계승문제가 표면화되면서 북한 내에 있어서 정치적 암투, 여러 정치세력간의 결탁관계 그리고 정치 다이나믹스가 일대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이며 이들 세력 간의 상대적 위치에도 적지 않은 변동이 있었을 것이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굳히기 위해서 혁명소조 출신의 일부세력과 당과 국가기관 내의 추종세력을 동원하여 당과 국가기관자체를 통제케 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북한 엘리트층 내에 숙청선풍을 몰고 왔으며 결과적으로 당과 국가기관의 현저한 약화현상을 가져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김정일도 김정은을 후계자로 굳히기 위해 매제인 장상택과 여동생 김경희를 중심으로 현 집권세력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 동원된 참여로서의 정치과정
대중조작은 전체주의체제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치기술이다. Kornhauser도 지적하고 있지만 전체주의체제란 엘리트에 의해 대중이 직접 조작될 수 있는 사회이다.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 중간모개집단이 개입하지 않고 엘리트가 직접 대중에 접근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이다. 공산정치체제의 이상은 그와 같은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다. 그것이 실현될 때 명실공히 전체주의적 지배(totalitarian control)가 가능해진다.
구소련을 위시해서 공산국가들이 그 이상 또는 이념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전체주의화에는 실패하였다. 그래서 perlmutter는 전체주의체제라는 개념의 타당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체제화 된 권위주의체제⌟라는 표현을 쓸 것을 제의하고 있다.
구소련이나 오늘의 중국은 초기에 비해 상당한 변화를 겪었고 Perlmutter가 말하는 바와 같은 전체주의 퇴색화의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북한에 관한 한 여전히 전체주의의 이념을 향한 노력이 멈추지 않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남북긴장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1960년 이후 소위 ⌜청산리운동⌟이라는 대중조작방법을 통해서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을 도와주고 상사가 부하를 지원할 뿐 아니라 현지사정을 정확히 파악해서 실적을 올리는 정신과 방법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엘리트와 대중을 직접 연결시키면서 엘리트가 대중의 수준에 내려가 기술, 문화, 이념적인 혁신을 실현하여 체제유지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조작방법을 통해서 김일성은 기존의 구제도를 하나씩 제거시킬 수 있었다. 가족제도를 위시해서 종교, 경제, 교육면에 이르기까지 엘리트와 대중사이에 놓여있는 거추장스럽고 대중의 충성심을 분산키길 우려가 있는 제도나 조직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중의 모든 활동을 당조직속의 참여 라는 테두리 속에 흡수 제한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조작된 구조적 테두리 안에서 북한이 허용하고 있는 참여는 소위 ⌜민주적 참여⌟라고 부르고 있는 ⌜당 노선에 대한 학습, 토론, 자아비판의 되풀이⌟이다. 그리고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대의원선거에 투표하는 일이다. 이 경우 정치참여는 완전히 ⌜동원된 참여⌟로서 북한정치체제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요, 선거란 체제에 대한 충성표시를 위한 계기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한 대중조작이라는 동원수법을 쓰는 이유는 대중의 정치무관심을 자극해서 참여의식을 높이려는 것이며 그러한 운동에 가담시켜 참여하는 동안에 대중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운동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심리적 연극(psychodrama)속에 북한주민을 몰아넣어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비져내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에 가까운 체험을 겪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으로부터 비롯된 이러한 체제는 김정일을 거쳐 더욱 공고화 되었고 이제 김정은으로 이어진 세습체제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관심이 되는 것이다.
4. 결 언
북한정치체제를 구조적 특성과 정치과정의 기본적 특성과 정치과정의 기본성격을 중심으로 고찰할 때 그것은 전체주의체제의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구소련의 스탈린치하의 체제를 방불케 하는 김일성체제라는 전체주의적 독재형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김일성의 장기집권, 주체사상이라는 개인숭배를 위한 공식 이데올로기의 강요, 그리고 남북 간의 대결관계라는 객관적 조건이 철저한 전체주의적 통제실시를 보다 용이하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었고 김정일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과정을 통해 더욱 공고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김일성주의만을 유일한 정통적인 사상노선으로 인정하는 이념적, 정치적 일원주의를 확고히 형성시켜 놓았으며 김일성의 신분으로 사유화된 당 = 국가체제(party-state system)을 구축하였다. 그 속에서 엘리트층 내부에는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계속되어 왔고 때로는 그것이 권력투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후계문제를 놓고 엘리트 내부에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어온 것으로 보이며 북한의 내정에 불안정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저한 유일체제, 일원주의적 당일국가체제를 만들어 놓은 북한체제는 바로 그것 때문에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북한체제의 수행력(performance)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가 과거 많은 전문가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북한은 경제적 침체성에 빠져 있으며 대외문제를 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 그 원인은 북한체제의 성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도로 중앙집권화 된 북한은 중앙정부에게 과중한 업무를 부담시켜 놓았으며 중앙정부는 현지의 요구와 문제에 즉각 대응할 능력을 갖고있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체제에서 구축한 절대적인 정책결정권의 독점이 합리적인 정책구상을 봉쇄하거나 저해하는 요인이 되며 편식적인 주체사상은 북한의 정책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체제의 수행력(performance)에 상당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오늘날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대폭적인 정책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자립경제에 의한 개발전략이 한계점에 와 있으며 주변국들 간의 관계변화와 핵 개발 등으로 인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 되는 가운데 빠져있어 보다 현실주의적인 정책전환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편식적이 주체사상을 고집하는 한 그것은 국제적 평화공존, 긴장완화무드에 역행할 수밖에 없으며 자립경제체제만을 고수할 경우에도 국제경제와의 결합은 어려울 뿐이다. 또한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면 할수록 현실문제에 대응하는데 애로가 있으며 반면에 현 체제로 현실에 대응해 나갈수록 그들의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기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더욱이 김일성이 자기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고, 김정일이 자기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은 세습체계 하에서는 이러한 딜레마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뿐아니라 체제변화의 근본을 기대할 수 없게 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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