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길 시집 51

내 고향 주문도

봄이면 한 아름 싱아 꺽어 허기진 배 채워가며 마을 공터에 모여 새끼줄 감아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고 여름이면 대빈창 모래밭 고인 물에 벌거벗고 뛰어들어 헤엄치고 해당화 목걸이 만들어 주렁주렁 목에 걸고 배골플 때마다 하나씩 빼먹고 뜨거운 햇살 맞으며 갯지렁이 잡아 망둥어 낚시하다가 낚싯대 갯벌에 꽂고 갯뻘물에 뛰어들어 마을 어귀 물 밀때까지 헤엄치며 놀던 곳 가을이면 추수한 땅콩 밭에 들어가 이삭줍고 단풍진 산에 올라 보리수 따먹으며 친구 집 소먹이로 온 종일 풀밭을 뒹굴고 총싸움 하던 곳 겨울이면 눈 내린 봉구지산 언덕길 올라 볏집으로 만든 눈썰매 타고 방앗간 양지바른 곳에 모여 구슬치기 자치기 하며 놀다 지쳐 굴뚝에 흰 연기 나올 때 허기진 배 움켜쥐고 가마솥 뚜껑 열어 고추장에 보리밥 비벼먹고 우..

차동길 시집 2021.10.26

마음

1. 고놈 참 이상하다. 보는 이가 있으면 자기 생각을 감추고 보는 이가 없으면 자기 생각을 드러낸다. 2. 고놈 참 희한하다. 누군가가 위로하면 죄를 단정짓고 누군가가 칭찬하면 교만함을 드러낸다. 3. 고놈 참 묘하다. 발가 벗겨진 채 심사대 위에 오르려니 몹시 부끄러워 하고 창피해 죽으려 한다. 4. 고놈 참 괴씸하다. 하지 말라는 짓은 어떻게든 하려하고 하라고 하는 짓은 마지못해 한다. 5. 고놈 참 고약하다. 좋은 것은 자랑하고 나쁜 것은 감추려고 안달복달이다. 6. 고놈 참 변덕스럽다. 똑같은 세상을 보면서 때로는 아름답다 하고 때로는 밉다 하니 변덕이 죽 끓듯 하다.

차동길 시집 2021.10.22

1.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그들이 쫓았던 것도 그들과 함께 사라졌다. 이 땅에서의 삶은 잠시 거쳐가는 길 삶은 풀이요 부귀영화는 꽃이니 풀과 꽃은 시들고 지게 마련이다. 2. 삶은 원래 그러거야 미움 시기 질투가 삶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사랑 믿음 소망이 살아가는 이유를 불러왔지 때가 되면 가진자나 못 가진자나 빈손으로 가야하니 이긴자도 진자도 없구나 삶은 원래 그런거야

차동길 시집 20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