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QT

욥을 통해 본 고통스런 축복

하나님 사랑 2012. 10. 4. 05:46

심한 괴로움에 고통스러움을 느끼는 욥을 보며

욥과 심리적, 정서적 공유를 해봅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자신이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까?

자신이 태어나던 그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같은 괴로움은 겪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록 말로써 하나님을 원망하는 표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욥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살아있으니까 고통도 괴로움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고통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곧 저 너머 어딘가에 기쁨과 평안함 그리고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는 것이다.

 

고통이 무엇인가? 괴로움은 무엇인가? 또 불행은 무엇인가?

육체적 건강함이 없어 느끼는 아픔이 큰 것 아닌가.

기쁨이 없어 슬픔이 너무 커서 느끼는 것이 괴로움 아닌가.

행복이 없는 상태가 불행이 아닌가.

 

그렇다. 지금 욥은 육체적 건강을 잃고 슬픔이 너무 커져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기쁨과 행복은 살아있기에 다시금 되 찾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을 하나님의 또 다른 방법의 축복으로 받아드려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까?

기쁨과 행복이 없는 상태가 고통이기에

고통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고통이 또 다른 방법의 축복이라는 증거는 무엇일까?

고통의 너머에서 손짓하는 기쁨과 행복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자는 지금의 기쁨과 행복을 바라보지 못한다.

오히려 저 너머에서 돌진해 오는 고통과 괴로움을 바라보게 된다.

 

지금 욥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저 너머에서 손짓하는 기쁨과 행복을 바라보기 때문이기에

욥은 축복을 받는 것이다. 아멘